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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수염 수술기(맹장염 수술기) #3 - 충수염 수술(맹장염 수술) 후 회복기

청춘이야기

by 발랄하고 우울한 청춘 2014. 8. 27.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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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수염 수술기(맹장염 수술기) #3

 

충수염 수술(맹장염 수술) 후 회복기


올리지 않으면 까먹을 것만 같아서 올립니다

 

입원 후 3~4일째 통증이 어느정도 가라앉았다. 예전에는 칼로 찌르는듯한 통증이었다면, 이번엔 둔한 통증정도? 좀 나아진 줄알았는데 알고보니 그게 아니었다. 

 계속해서 내 팔, 아니 내 손등에 꽂혀있던 링거 중 하나인 진통제덕이었다. 이전엔 아무리 눌러도 극심한 통증이 가라앉지 않아서 왜이리 통증이 안가라않나 했는데, 그 진통제는 정말 잘 듣는 거였다. 진통제를 다 맞고난 후에는 다시한번 극심한 통증이 찾아왔다. 그래도 이전에 비해 거동정도는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소화는 잘 되는편은 아니었지만 밥도 나름대로 잘 먹고 서서히 상처도 아물어가는 것만 같았다

 계속해서 상처를 보고 상처에 붙여놨던 거즈를 갈고, 밥 먹기 전후에 강제 걷기 운동을 하는 나날. 개복했던 상처가 겉으로 보기엔 아물었다. 상처 주변을 눌렀을 때 아프고 톡 튀어나오긴 했지만, 내 똥배인가보다 했다. 그렇게 1주일정도 입원을 한 후 나는 드디어 퇴원을 했다.

 퇴원 후 이틀정도 진통제를 먹어가며 졸업작품을 해보았지만 역시 역부족... 졸업발표는 포기했다. 교수님께 발표를 못할 것 같다는 연락을 할 때 어찌나 가슴이 미어지던지... 하지만 상처는 덜 나았을지언정 교양 시험은 보러 가야 하기에 상태가 안좋았지만 나름대로 시험공부를 하고 학교에 갔다. 6학점만 들으면 되기에 하루만 딱 가서 수업3개만 들으면 되는 상황. 입원한 주는 못갔지만 시험을 보러 학교에 갔다. 그렇게 아침부터 학교에가서 집에오니 밤.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 사건은 일어났다.

 위에도 말했듯이 개복부위가 유난히 뜨끈뜨끈하고 톡 튀어나오긴 했지만, 상처가 낫느라 그런가보다 했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상처에서 갑자기 하얀 무언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상처부위에서 진물이 나오는가해서 닦아내고 그 액체가 묻었던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하고나왔다. 그런데.. 조금씩 나오던 하얀 액체가 갑자기 콸콸콸 쏟아지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기에 상처는 가라앉았길래 공기가 통할 수 있는 거즈를 대고 허리에는 보호대까지 했었는데, 그 모든걸 뚫을 정도로 개복부위에서에서 콸콸콸 하얀액체가 쏟아졌다. 고름인지 지방인지 모를 하얀 액체. 뭔지 모르겠지만 냄새가 고약했다. 급하게 옷을 갈아입고 메디폼을 붙여봤으나 메디폼의 흡수력으론 안될정도로 콸콸콸 쏟아졌다. 그래서 안되겠다며 응급실이라도 가야겠다며 나갈 채비를 하는데, 하아 이와중에 할머니는 컴퓨터를 끄고가란다. 아니 내가 이렇게 응급상황인데 컴퓨터 끄는 것이 문제인가? 컴퓨터는 냅두면 꺼지니까 일단 병원좀 가자는데 끝끝내 컴퓨터 코드를 뽑으신다. 그렇게 짜증가득하고 상처부위에는 휴지 등으로 진물이 흐르지 않게 조치를 한 후 응급실로 향했다.

 택시를 타고 원자력병원 응급실에 간 나. 다시 응급실 절차를 밟고 누워있노라니 인턴, 간호사가 와서 상황을 물었다. 그리고 이후에 의사가 와서까지 똑같은 말을 여러번 되풀이하여 나의 상황을 말했다. 그와중에 간호사와 의사에게 진상부리는 진장아저씨. 상태만 좋았다면 한마디 해주겠지만, 아프니 내가 참아야지. 간단한 처리를 한 후 온 외과의사. 그는 상처를 보더니 소독을 한 후 상처부위를 눌러 고름을 짜냈다. 계속해서 계속해서 상처 주위를 꾹 꾹 눌러 고름을 짜내는 의사선생님. 성심성의껏 다 짜낸 후 다음날, 아니지 새벽이었으니 그날 외래를 다시 오라고 했다.

 다음날 외래로 대 담당 주치의를 만나 이야기를 들으니, 아마도 개복을 할 때 근육을 갈라서 개복을 했기 때문에,  지방이 흘러나온 것 같다고 말하였다. 하아 아무리 그날 학교다니는 것이 꽤나 운동을 했다지만 지방이 흘러나올 정도로 격렬했던가? 어쨌든 다시 상처 주변의 고름을 다시 짜낸 후, 상처처치를 하던 주치의 아래의사가 입원을 제안했다. 어차피 매일 와서 처치를 받아야했기에 입원하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에다. 하지만, 5인실이 없고 2인실밖에 없단다. 이미 수술과 입원으로 모아두었던 돈을 모두 썼기에(학생이 벌면 얼마나 벌어놨겠는가) 일단 입원제의를 거절하고 1주일정도 통원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그 주 금요일, 다시한번 입원제의를 받았다. 마침 5인실에 자리가 나 있었고, 다음날은 토요일. 토요일은 처치를 받으려면 응급실가격이 나오기때문에 5인실 입원가격이 더 저렴했기에, 나는 다시 입원했다. 내가 입원했던 그 층의 입원실. 내가 다시 입원하자, 병실사람들은 또 다시 나를 어려워하기 시작했다. 암환자가 대부분인 원자력병원에 젊디젊은 내가 입원하니 무슨 사연이 있나 해서 사람들이 쉽게 말을 못걸기 떄문이다. 나중에 다시 충수염 수술(맹장수술)을 해서 다시 입원한거라고 밝히니 그제서야 손녀처럼 딸처럼 대해주셨다.

 다시 시작한 입원. 이전 입원과 다른점은 매일 아침 피를 뽑진 않고 가끔씩만 뽑고, 링거는 전혀 달지 않고 하루에 2번 아침 저녁으로 처치를 했다는 것이다. 링거를 달지 않고 통증은 상처를 짜낼 때 정도밖에 없었기 때문에 거동은 자유로웠다. 거동하기가 힘들어서 등에 땀이 차서 잠을 못자는 일도 없었고, 일어나기 위해 낑낑대는일도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심심하지 !! 그래서 결국 노트북으로 와이파이 결제를 한 후 맘껏 인터넷을 사용했다. 인터넷이라도 있으니 좀 살 것 같았다. 하지만 난 또 시험을 봐야하자나? 시험은 봐야하기에 병실에서 밥먹을 때 쓰는 식탁에 프린트와 연습장을 늘어놓고 공부를 했다. 밥먹고나서 강제산책 시간에도 프린트를 들고가서 공부를 했다. 시험 전날까지 퇴원을 하네 마네 하다가 다음날 시험이니 오늘 저녁에 퇴원을 해야할 것 같다고 해서 결국 시험 전날 퇴원했다. 

 그렇게 퇴원을 하고 시험을 보고,  상처가 다시 아물때까지 통원을 한 나. 그렇게 상처가 아물어가서 충수염 수술기는 끝날 것 같았지만... 그건 성급한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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